Notes & Text

  • About Identity

    1. 미국에서 막 유학을 시작하고 잠시 한국에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이다. 

    참 고마우신 분께서 내 작업을 좋아해주셨다. 그리고 내 작업이 더 멀리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시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감사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분을 다시 뵙기로 하고 가로수길 한 카페에서 뵈었다. 그 분께서 책을 하나를 건내주셨다. '한국의 정체성'. 그리고 우리는 일년에 몇번만 대중에게 공개된다는 간송미술관을 방문하여 겸재 정선의 산수화를 보았다. 집에 와서 그 책을 읽는데 죄송스럽게도 채 10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그만 덮어버렸다. 

    선물을 주신 분께도 죄송했지만, 한번도 뵈지 못한 필자에게는 더욱 더 그랬다. 

    어느 구절 하나도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없었다. 아무런 이유없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것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가설만이 전제된 상태에서 독자를 설득하기 급급한 글로만 보였다. 

    2. 2008년 여름에 2주가량을 한국에 갔을 때의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패션사진과 순수사진의 경계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진가는 자신의 Style을 만들고 그 스타일 안에서 다양한 현재성을 지니는 트렌드의 요소들이 패션 사진을 만들었다. 

    반면 내가 이해한 순수미술은 시간과 시대적 가치 혹은 윤리적 도덕적 잣대를 뚫고 지나가는 통시성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결코 상업사진을 저평가하거나 순수미술을 성스러운 영역으로 올리는 시선은 아니다. 다만, 순수사진가가 패션 사진을 몇번 찍었다고 그 정체성이 패션사진가가 되는 것이 아니듯, 패션 사진가가 전시를 몇번 했다고 해서 순수미술가가 된다는 것은 예술의 경계의 모호성을 이용한 말장난이라고 생각한다. 

    한 유명 라이센스 잡지의 편집장을 만날 기회가 생겼고, 그 분도 흔쾌히 만남을 수락해 주셨다. 

    감사하게도 사진이 마음에 드신다고 하신다. 그리고 덧붙여 말씀하시는 것이 사진가가 오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적인 요소를 얼마나 트렌드하고 안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느냐라고 하신다. 한국적인 요소도 그렇거니와, 트렌드하고 안정적인 사진이라고 함은 결국 말안에서 논리적으로 보일 뿐 모두 시대와 공간에 한정을 지어 결국에는 창조적이지 못한 작가로 연명하라고 설득하는 것 처럼 들렸다. 

    그 분은 그분이 하신 말 앞에 '한국의 우리 잡지에서" 사진가로 오래 '버티기' 위해서라는 말을 하시기를 겁내는 사람으로 보였다. 

    3. 2011년 겨울에 한 사진 공모전 인터뷰를 갔을 때의 이야기이다. 

    유명한 작가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 학예실장부터 심지어는 외국에서 초빙된 유명 큐레이터와 비평가가 한자리에 보여 사진을 심사한다. 심사라는 말 자체가 사실은 좀 재미있긴 하다. 

    소수의 몇분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심사위원님들이 묻는 질문은 역시나 "한국이 작업에 어디있는가?", "무엇을 통해서 한국작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가?" 라는 류의 질문이 주된 핵심 질문이다. 혹자는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수도 있겠다만,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게 어떻게 순수하게 궁금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면전에서 그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말은 차마 할 수 가 없어 대답을 대강대강하고 홀가분하게 자리를 떴던 기억이 있다. 

    4. 2013년 겨울에 한국에 잠시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이다. 

    한 작가께서 뜬금없이 "어떻게 먹고 사니?"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먹고 사냐고? 나도 잘 모른다. 참 희한하게 풍족하진 않지만, 힘들었던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자라지 않게 잘 먹고 산다. 물론 내 생계를 위한 주를 이루는 수입원은 상업사진이다. 패션화보도 촬영하고, 카달로그 촬영도 하고, 고맙게 가끔은 광고촬영도 들어온다. 

    물론 사실대로 대답했다. 나는 그것이 부끄럽지도, 숨겨야할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아간다. 부모님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결혼 후에 선언한 후 뱉은 말을 주워담기 어려워 시작한 내 주 수입원은 이제 나에게 고마운 존재이다. 

    그러자 그 분은 "전업작가"로 살아야 작가라고 할 수 있지 않겠냐는 눈치이다. 

    이건 무슨 앞, 뒤, 옆, 주위를 둘어봐도 맞지 않는 말인가? 나는 작가다. 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고, 내 상황과 여건에 상관없이 작업을 만든다. 아니 혹여 그 사람이 나에게 삶을 꾸려나갈 방도라도 마련해준다면 또 다시 생각해보겠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그런 자기중심적인 말을 그렇게도 당당하게 할 수 있는지 그분의 용기에 박수를 칠 뻔했다. 

    국가의 정체성과 똑같이 모든 정체성을 규명하려고 안간힘을 쓰려는 사람들을 보면, 많이 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전업작가가 몇이나 되는가. 그나마도 대부분의 경우 빨라봐야 마흔 중반을 넘어서 작업만 하면서 여생을 보낸다.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작가도 있고, 학원에 나가 미술지도를 하는 작가도 있다. 나처럼 상업일을 받아서 생계를 꾸리는 자도 있고, 갤러리를 통해서 작업을 포장하고 판매하는 작가도 있다. 

    작가에 전업작가가 어디있는가? 의사를 두고 전업의사라고 하는 경우도 없고, 변호사를 놓고 전업법조인이라고 일컫지도, 회사원을 두고 전업 회사원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말은 어디에서 온 것인고 하니 전업주부에서 온 것이다. 심지어는 요즘은 가사노동도 분업화되어 전업주부를 찾기도 힘든 세상이다. 하물며 그 작가들은 스스로를 4-50년 전의 단어에 자신의 입장을 갖다붙여 마치 그것이 큰 훈장이라도 되는 양 훈계를 한다.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작업을 만드는 자들은 모두 작가이다. 다만, 내가 돈을 받고 만드는 사진을 내 작업이라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심지어는 그조차도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패션사진작가에게 열정을 쏟아부은 결과물은 그들에게 당연히 작업이다. 

    -나는 모든 일련의 세뇌과정을 거부한다. 

    한국은 내가 태어나진 곳이다. 다만 고맙게도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여려가지로 도움이 된 적이 있었을 뿐, 그것이 내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애국이냐 매국이냐의 이분법의 논리의 희생양이 되어야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심각한 논리적 오류이다. 나는 내 나라를 그리워하고 늘 생각한다. 하지만 내 나라를 사랑하는 것과 작업에 내 나라를 사랑하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뜨거운 사랑을 해본 자라면 알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순간 내 입에서 저멀리 달아나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사실만 더 강조해준다는 것을. 국가든 개인의 직업적 정체성이든, 결국엔 내게 주어진 적은 비율의 가능성안에서 방법에 대한 선택권만 주어진 것을 마치 개인이 모든 것을 개척하고 선택한 것으로 포장 혹은 세뇌하는 것은 결국엔 자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