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s & Text

  • 유행의 원위에서 복상사를 피하는 방법

    유행은 원위를 맴도는 점과 같다.

    그 속도는 우리가 움직이는 속도보다 항상 빠르다. 

    유행에 앞서는 자와 뒤쳐지는 자의 구분은 쉽지 않다. 

    다만, 유행을 쫓고자하는 욕구가 표출된 작업은 움직이는 유행의 끝을 간신히 붙잡고 뒤따라가는 모양새이다. 

    그 붙잡고 있는 끈의 길이가 다를 뿐 그것은 명백히 뒤에서 가고 있다. 

    원은 앞과 뒤가 없다. 유행의 입장에서 앞을 보면 앞서가고, 뒤를 돌아보면 뒤쳐진 것이다. 

    대중은 유행위에 올라탄 승객이고, 원안에는 이 원의 크기나 원을 도는 속도를 조정할 수는 결코 없는 미술계 인사들이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눈도 역시 유행이라는 점을 바라보다 문득문득 그 점의 앞과 뒤를 둘러본다. 그러다 종종 원의 속도가 빨라지면 뒤에 줄을 잡고 따라오는 작가들을 한참 유행을 앞서가는 사람들로 착각하기도 한다. 

    원밖은 더 큰 세상이다. 예술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더 많은 수의 사람들, 동물들, 식물들, 미생물들. 

    작가는 원위를 도는 선을 이루는 집합체인데, 유행이라는 점이 나를 스치고 지나갈 때 절정의 섹스를 능가하는 오르가슴을 느낀다. 그 점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사정하고나면 힘이 빠져 한동안 달달한 잠을 잔다. 간혹, 그렇게 영원히 잠드는 이들도 있다. 복상사일까. 

    그 점에 연연하지 말아야한다. 

    그 점의 존재를 잊어야한다. 

    그 점에 연연치 않는 방법은 두가지이다. 

    대중의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던가, 개인이 작가라는 정체성에 의미를 두지 말거나.